그동안 여왕은 영국의 상징이자 최대 소프트파워로 대영제국 해체 이후 영연방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슬하에 찰스 왕세자와 앤드루와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 등 3남 1녀를 뒀는데, 장남인 73살 찰스 왕세자가 찰스 3세 왕명으로 왕위를 이어받았다.
[휴 에드워즈/ 영국 BBC 진행자 : 영국 왕실은 성명을 발표했다.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현지시간 8일) 오후에 서거했다는 내용이다.]
1926년생인 여왕은 1945년 공주 신분으로 입대해 운전병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아버지 조지 6세의 서거 이후인 1952년 2월 25살의 젊은 나이에 영국의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영국 최장수 군주이면서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재위하며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는데 즉위 70년 만에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
[리즈 트러스 / 영국 총리 : 엄청난 손실의 날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 여왕은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6일엔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등 최후까지 역할을 충실히 다했다.
재위 중 최근 취임한 트러스 등 15명의 영국 총리와 함께 하며,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유럽연합 EU 결성, 영국의 EU 탈퇴 등의 격랑 속에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사회 통합에 앞장서왔다.
건강은 지난해 4월 99세였던 남편 필립 공의 사망 이후 급격히 쇠약해져 10월엔 입원하기도 했고 특히 올해 2월에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뒤, 6월에 열린 즉위 70주년 나흘간 행사에 발코니에서 두 번 잠깐 모습만 보인 이후 대외활동을 줄줄이 취소해 건강 우려가 증폭돼 왔었다.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이혼과 사망, 차남 앤드루 왕자의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 등 노년에 후손들 문제로 골치를 많이 앓았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여왕은 한국 대통령 6명(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을 만났기도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국빈으로 영국에 초청하기도 했으며, 1999년 한국을 방문해서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고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73세에 한국을 방문해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고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으며, 고령에도 국제정치의 흐름을 날카롭게 파악하며 유머와 친화력을 잃지 않아 왔다.
여왕의 서거 직후 큰아들 찰스 왕세자(73)가 곧바로 국왕의 자리를 승계했다.
찰스 왕세자는 성명을 발표하고 “소중한 군주이자 많은 사랑을 받은 어머니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며 “영국 전역과 왕국, 영연방,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왕을 잃은 것이 깊은 슬픔이 될 것을 안다”고 말했다.
1926년 출생한 엘리자베스 2세 여황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마리다. 1952년 2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후 70년간 영국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다. 재임 기간 중 15명의 영국 총리가 거쳐갔고, 냉전과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 유럽연합(EU) 출범과 영국 탈퇴 등 격변기를 겪어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는 오는 18일(현지시간) 국장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까지 서거 이후 열흘간 이어진다.
서거 닷새 후인 13일부터는 닷새간 여왕의 유해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하루 23시간 동안 일반에 공개돼 일반인에게도 경의를 표할 기회가 주어고 왕위를 계승한 큰아들 찰스 3세는 서거 당일인 8일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처음 알현을 받은 뒤 열흘간의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
서거 당일인 8일(현지시간) 버킹엄궁이 서거 사실을 공식 공표한 뒤 전국에서 1분간 묵념이 이뤄졌다.
공식 공표 이전에 군주를 대신해 영국 정부를 운영하는 트러스 총리와 내각, 여왕을 위한 정치문제 자문기관인 추밀원은 여왕의 개인 비서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았고 이후 여왕의 처소와 영국 관가에는 일제히 조기가 게양됐었다.
버킹엄궁에서는 공식 서거 발표문을 철책에 내걸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세인트폴 대성당에서는 종이 울렸습니다.
서거 다음 날(9일)에는 즉위위원회가 구성돼 제임스 궁의 발코니에서 찰스 3세를 공식 군주로 선포한합니다. 차기 군주로 공식선포된 찰스 3세가 트러스 총리와 내각, 야당 당수, 캔터베리 대주교, 웨스트민스터 성당 주임사제의 알현을 받는다.
서거 이틀 후(10일)에는 여왕의 관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육로로 스코틀랜드 의회로 옮겨집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웨일스 카디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공식 선포가 이뤄지고, 의회에서는 고인에 대한 헌사가 이어지게된다.
서거 사흘 후(11일)에는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성 자일스 대성당까지 여왕의 관을 앞세운 장례 행렬이 이어며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는 찰스 3세를 비롯해 왕가가 참석한 가운데 장례미사가 거행가 예정 되어있다.
미사 후 여왕의 관이 머무는 성 자일스 대성당은 대중에 24시간 동안 공개되며 찰스 3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도 조문을 받는다.
그는 군주로서 첫 일정으로 스코틀랜드 의회와 이어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 열리는 장례미사에 참석고
이후 스코틀랜드 자치수반의 알현을 받으며,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조문을 받으며 서거 나흘 후(12일) 늦은 밤 여왕의 관은 에든버러에서 왕실 열차로 런던으로 옮겨진다.
찰스 3세는 비행편으로 북아일랜드로 가서 힐스버러 성에서 조문을 받고, 벨파스트의 성의 세인트 앤 대성당에서 추도예배에 참석하게된다.
서거 닷새 후(13일)에는 여왕의 관이 버킹엄궁에 도착, 장례식에 앞서 여왕의 관은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 홀로 옮겨져 유해가 일반에 공개되기도 한다. 5일간의 참배 기간 일반인이 여왕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여왕의 관은 웨스트민스터 홀 중간의 관대에 놓며 웨스트민스터 홀은 23시간 동안 대중에 개방된다.
서거 7일 후(15일)에는 찰스 3세가 웨일스로 가서 카디프의 란다프 대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하며 이후 그는 웨일스 의회를 방문해 조문을 받고,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을 알현하게된다.
영연방 전체에서는 파견단이 런던에 도착, 서거 8일 후(16일)에는 찰스 3세가 왕국 총독과 총리들을 맞이며 서거 9일 후에는 찰스 3세가 장례식 참여를 위해 방문한 해외 왕가 인사들과 전 세계 주요 인사를 나눈다.
서거 10일 후에는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이 치러지게 되면서 여왕의 관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사원으로 옮겨진 전국에서는 2분간 묵념이 이뤄원 질 예정이다.
예식 끝에 여왕의 관은 포차로 하이드파크까지 옮겨지면서 거대한 장례 행렬이 뒤따르게 된다.
이후 여왕의 관은 영구차에 실려 윈저성으로 옮겨지게 되도 이후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에서 예식과 함께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진 뒤 영원한 안식에 든다.